별무리
T: H.
H: 응.
T: 조심해서 가.
H: 응. 데려다줘서 고마워.
T: 응.
T가 손을 흔들고 H도 마주보고 손을 흔든다. T는 병원이 있는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H를 본다.
짧은 사이.
T는 641번 버스를 타고 아까 H와 함께 있던 집으로 간다. T는 한달 전 T2와 대화를 나누었던 한밤의 대화를 떠올린다. T2의 목소리는 T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다.
T: 아니,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맞아요. 그런데…
T2: 책이 좋은가 안 좋은가는 중요하지 않아요.
T: 음…
T2: H2의 말은, H는 ‘푸르른 틈새’가 어떤 책이든 당신이 선물했기 때문에 좋아할 거란 거였어요.
T: 네…
T2: 둘이 메시지는 계속 나누고 있는 거죠?
T: 그런데 저는 차일 것 같아요. 아무래도…
T2: 일단 내일 저녁에 서점에 들러요. 서점에 들러서 제가 말한 책 두 권이랑 다이어리를 사요.
T: 다이어리는… 연보라 색…?
T2: 맞아요.
T는 어물거리는 말투로 T2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. T2는 상냥하게 답한다. T2는 굉장히 차분하다. T는 잠시 창문을 연다. 새벽이다.
T: H2는 이 모든 걸 어떻게 아는 거죠?
T2: 말했잖아요. H2는 고양이고, 고양이라서 인간인 우리보다 많은 걸 알 수 있다고요.
T: 고양이의 생각을 T2는 어떻게 아는 거에요?
T2: 몇 달 전에 고양이의 생각을 우리의 언어로 정확하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을 완성했어요. 제가 키우는 H2의 생각이 너무 궁금했거든요.
T: H2의 생각이요?
T2: 네. 아무래도 H2는… 저에게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.
T: 음…
T2: 더 나아가 저를 단순히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고요.
T: H2는 H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죠?
T2: 고양이는 사람보다 더 높은 차원을 인식할 수 있어요.
T: 4차원 이상의?
T2: 네. 그래서 H2는 평행한 다른 우주에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또 존재한다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고 해요.
T: 그러다가… 지금 제가 존재하는 우주의 H를 인식하게 되었다?
T2: 그렇죠. 보통은 다른 차원의 자신도 고양이인데, T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H는 고양이가 아닌 인간이었죠.
T: 어째서 그렇게 된 거죠?
T2: H2도, 저도 그 이유까진 알지 못해요. H2가 아는 건 T가 존재하는 우주의 H는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에 H2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.
짧은 사이.
T2: H2는 고양이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H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어요.
T: 그래서 저를…
T2: 네. H에게 고양이로서 줄 수 있는 도움은 없지만, H처럼 사람이라면 가능하다고 봤죠.
긴 사이.
T: 너는 고양이 같아.
H: (잠결에 T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)
T는 T2와는 더이상 연락할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. T2의 우주에서 들려오던 무형의 신호음이 들리지 않는다. T는 두렵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. T2가 말해준대로.
T2: 잘 되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.
T: 정말로… 잘 되지 않아도요?
T2: 네.
T: 결국엔 잘 된다는 말인가요?
T2: 확실한 건,
T: 네.
T2: 모든 다른 우주의 H 옆에는 T가 있고,
T: T 옆에는 H가 있다…
T가 H를 처음 만난 그날은 T2가 말해준 그날이었다. H는 꽤 창백하고, 겨울 날씨는 춥고. T는 찬바람이 부는 거리를 H와 함께 걸으며 지금도 평행한 다른 우주의 T’와 H’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.
(제목인 별무리는 닉 페인의 희곡 ‘별무리’의 제목을 그대로 따 왔다.)